
들어가며: 중세 유럽의 충격적인 위생 현실
오늘날 우리는 수세식 화장실과 깨끗한 상하수도 시설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수세식 변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몇십년전까지 '푸세식(재래식)'화장실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중세 독일과 유럽의 화장실 문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중세 독일인들이 대소변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리고 고대 로마의 발달된 상하수도 시스템과 어떻게 비교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중세 유럽 성(城)의 변소: 가더로브(Garderobe)
귀족들의 '첨단' 화장실

중세 독일과 유럽의 성에서 귀족들이 사용했던 화장실은 가더로브(Garderobe, 독일식으로 가더로베)라고 불렸습니다.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옷장(garde de robes)'이라는 뜻으로, 암모니아 성분이 벼룩과 이를 죽인다고 믿어 옷을 보관하기도 했던 공간에서 유래했습니다.
가더로브의 구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성벽에서 돌출된 구조물: 성 외벽 쪽으로 툭 튀어나온 형태로 설계되었습니다
- 단순한 구멍: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배설물이 중력으로 자유낙하하여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나 성 밖 오물 구덩이로 떨어졌습니다
- 벽에 뚫린 구조: 일부는 성벽 내부에 구멍을 파서 배설물을 밖으로 배출했습니다
독일 뷔레스하임 성(Bürresheim Castle)에는 현재도 3개의 가더로브가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중세 화장실
중세 화장실은 단순히 불편한 수준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었습니다:
- 낙상 사고: 12세기 유럽 연대기에는 성의 화장실 목재 좌석이 부러지면서 아래 오물 구덩이로 떨어져 사망한 귀족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암살 통로: 가더로브의 배출구를 통해 적군이나 암살자가 침투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 1204년 샤토 가야르 함락: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군이 오물 배출구를 통해 성 내부로 침투하여 영국군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패배는 영국의 노르망디 영토 상실로 이어졌고, 존 왕의 재정 압박과 정치적 불안을 심화시키며 훗날 마그나 카르타로 이어지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배변 처리 방법
도시 거주민
중세 독일 도시에서는 로마 제국이 남긴 상하수도 시스템이 일부 남아있던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 요강 사용: 서민들은 주로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 지정된 장소 폐기: 중세 도시 조례(Stadtrecht)에는 요강의 내용물을 정해진 장소에 폐기하도록 규정했습니다
- 실효성 낮은 규제: 파리, 쾰른, 마인츠 등의 기록에서는 밤에 창문 밖으로 오물을 버리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 공중 화장실: 일부 도시에는 공중 화장실이 존재했지만 매우 부족했습니다
실제로는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도로변이나 골목에서 급하면 처리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도시 전체가 악취와 오물로 가득했습니다.

농촌 주민
농촌 지역에서는:
- 야외 배변: 숲이나 수풀 근처에서 해결했습니다
- 지정된 장소: 일부 농촌에서는 정해진 장소에 화장실을 건설했습니다
- 뒷처리: 짚, 이끼, 건초, 나뭇잎 등을 사용했습니다
중세 후기의 부분적 개선 노력
모든 것이 암흑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13~15세기 일부 독일 도시에서는 위생 개선 노력이 있었습니다:
- 분뇨 수거 직업: '밤의 인부(Nachtkärrer)'라 불린 분뇨 수거 전문 직업이 등장했습니다
- 배수로 시도: 뉘른베르크, 뤼벡 같은 도시에서는 도랑형 배수로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로마 시대의 체계적인 시스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한적이었습니다.
중세 위생 상태와 전염병
열악한 위생이 초래한 재앙
중세 유럽의 비위생적인 환경은 전염병 창궐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 흑사병(페스트): 14세기 중세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0~50%를 사망시켰습니다
- 1348년 기록: 흑사병 전파 2년 만에 이미 유럽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했습니다
- 1349-1350년: 독일과 스칸디나비아반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사체와 분변을 거름으로 사용했고, 벼룩이나 쥐 등 유해생물에 대한 방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인류가 손 씻기를 생활화한 것은 1870년대에 들어서였습니다.
향수와 하이힐의 탄생 배경
중세 유럽의 열악한 위생 상태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 향수의 발달: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 하이힐의 등장: 거리를 뒤덮은 오물을 피하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이 등장했으며, 이는 사회적 지위와 패션 요소와 결합해 확산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와 이탈리아의 발달된 상하수도 시스템
로마의 혁신적인 수도 시스템
중세 독일의 열악한 위생 상태와 대조적으로, 고대 로마는 놀라운 수준의 상하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아쿠아덕트(수도교) 시스템
- 기원전 312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최초의 수도 '아피아 수도(Aqua Appia)'를 건설했습니다
- 11개의 수도교: 로마에는 총 11개의 수도교가 있었으며, 전체 길이가 350km에 달했습니다
- 100만 인구 공급: 이 시스템으로 고대에 드물게 도시 인구 100만을 달성했습니다
- 풍부한 물 공급: 상류층과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1인당 최대 84갤런(약 318리터)에 달하는 물이 공급되었습니다
정교한 배수 시스템
- 물 공급 체계: 산악지대나 샘물에서 도시 중심까지 중력을 이용해 물을 공급했습니다
- 경사도 조절: 평균 0.2~0.5%의 정밀한 경사도로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했습니다
- 카스텔룸(분배탑): 도시에 도달한 물을 공공 목욕탕, 분수대, 공중화장실, 상류층 저택으로 분배했습니다
로마의 화장실 문화
고대 로마의 화장실 시설은 중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습니다:
- 수세식 변기: 상류층 주택과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수세식 변기와 상수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 자연 수세식: 화장실 아래에 항상 물이 흐르도록 하여 배설물을 씻어 내렸습니다
- 공중 화장실: 칸막이 없이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 클로아카 막시마(대하수도): 기원전 600년부터 형성된 거대한 하수구 시스템으로 오물을 티베리스강으로 배출했습니다


목욕 문화의 번영
로마 시대 상하수도 발달의 정점은 목욕 문화였습니다:
- 기원전 33년: 율리아 수로 건설 후 공중목욕탕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 926개의 공중목욕탕: 로마 황금기에는 11개의 제국목욕탕과 926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었습니다
- 복합 문화공간: 온탕, 냉탕, 미온탕에 휴게실, 상점, 도서실, 체육실, 미술관 등을 갖췄습니다
로마 시스템의 소실과 중세의 퇴보
왜 로마의 기술이 사라졌을까?
중세 독일을 포함한 유럽이 고대 로마 수준의 수도교를 건설하고 유지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의 단절: 서로마 제국 멸망 전후로 콘크리트 제조 기술이 잊혀졌습니다
- 공급망 붕괴: 납관 제조를 위한 채굴과 제련 공급망이 제국 분열로 무너졌습니다
- 행정·재정 구조 붕괴: 수도교 유지에는 국가 단위의 행정력, 세금 징수 체계, 군사적 보호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중세 봉건 분권 구조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 복합적 위생 악화 요인: 도시 인구 폭증, 상수도 붕괴, 흑사병에 대한 공포, 종교적 금욕 담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목욕 문화가 위축되었습니다
중세 말기의 더욱 악화된 상황
중세 말기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 베르사유 궁전: 17세기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 1,000명의 궁신과 4,000여 명의 사용인이 생활했지만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 18세기까지: 유럽에는 화장실이 매우 드물었고, 1589년 영국 왕실은 "복도나 옷장을 더럽히지 말라"는 공개 경고문을 걸어야 했습니다
결론: 역사가 주는 교훈
중세 독일과 유럽의 화장실 문화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대 로마가 이룩한 놀라운 위생 시설과 상하수도 시스템은 제국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고, 중세 유럽은 천 년 이상 열악한 위생 상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암흑기에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13~15세기 일부 도시에서 시작된 위생 개선 노력은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인류가 다시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습니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앗아갔지만, 역설적으로 이 재앙이 위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깨끗한 화장실과 상하수도 시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경험과 교훈이 쌓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로마의 시스템이 유지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지탱할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구조의 문제였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오늘도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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